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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 『다시, 올리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니시리즈 중 하나로 『올리브 키터리지』를 꼽는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주인공 올리브를 참으로 다채롭게 표현해 주었다. 그 원작 소설인 『올리브 키터리지』와 속편 『다시, 올리브』에서 주인공 올리브는 반복되는 고립과 상실, 억눌린 감정을 지닌 중년 여성이다. 독자가 흔히 예상하듯 작가는 그녀 안에 숨겨진 불안이 가족 내 상실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한다. 서른 살에 아버지의 자살을 경험한 올리브는 이후 자기 감정과 주변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생활 태도를 보인다. 이런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안기고, 아들 크리스토퍼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하여 결국 둘 사이의 단절을 초래한다. 크리스토퍼는 어머니를 회피하고, 올리브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자살 충동까지 경험한다. 올리브는 자신이 엄마로서 실패한 사람이라고 늘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 못지않게 복잡하고 다채로운 측면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소설은 연작소설들을 통해서 올리브라는 인물을 점진적이고 다층적으로 형상화한다. <약국>에서는 남편 헨리의 시선을 통해 감정 기복이 심하고 냉소적인 인물로, <밀물>에서는 제자인 케빈의 관점에서 강인하고 보호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작은 기쁨>에서는 자유간접화법을 통해 독자가 올리브의 내면에 직접 접근하게 된다. 특히 며느리에 대한 질투로 아들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속옷을 훔치는 장면은 귀엽고 우스꽝스러운 복수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앞서 언급한 고립감과 복잡한 감정이 도사리고 있다.

세상 다반사가 올리브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와 조금씩 어둠을 더한다. 특히 전편인 『올리브 키터리지』에서는 올리브가 어두운 의식에 갇혀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이 어두운 의식은 속편 『다시, 올리브』에서 시인이 된 제자의 시로 되돌아온다). 그녀 자신도 이를 인식하고 있으며, 그 어둠은 자주 밖으로 새어 나와 그녀를 괴롭힌다. 아들 결혼식에서 며느리의 침대에 앉아 과거를 회상하다 오징어 먹물이 자신을 관통한다는 생각(<작은 기쁨>), 살인자 아들을 둔 이웃을 방문한 뒤에는 진흙 같은 진창이 온몸에 퍼지는 듯한 감각(<튤립>), 그리고 그 어둠이 검은 손가락으로 형상화되어 자신을 질책한다고 상상하는 장면 등에서, 그녀의 의식은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내게 답답하거나 어둡게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다. 어떻게 이런 어두운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녀의 전진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초반의 올리브는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쉽게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가족을 과도하게 통제하지만, 정작 자신은 고립된 채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장면은 자살을 시도하려는 케빈을 만나는 장면. 대화를 통해 올리브는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를 솔직히 말하고, 상대방의 고통에 귀를 기울인다. 또 다른 변화는 잭 케니슨이라는 외로운 남자와 관계를 맺는 장면.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는 둘이었지만,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고 마침내 함께 한다. 잭이 “날 혼자 두지 말아요”라고 말할 때, 올리브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그녀가 다시 ‘살아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결정적 계기이다. 올리브와 잭의 우연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만남은 이 소설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다시, 올리브』에서는 잭과 올리브가 밤마다 끌어안고 자는 모습을 그려주면서, 그녀의 불안이 차츰 줄어드는 것으로 묘사된다. (기회가 되면 올리브의 우스꽝스럽지만 매력적인 장면들을 모조리 묘사하고 싶지만 짧은 글이라 안타깝다. 특히 잭과 올리브의 장면들.)

들뢰즈는 반복을 단순한 동일성의 재현으로 보지 않는다. 참된 반복은 동일한 것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 안에서 차이를 생성하는 사건이다.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반복되는 어두운 의식 역시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의 반복이다. 사실 주디스 버틀러도 “그 누구도 상처를 반복하지 않고서 어떤 상처를 돌파할 수 없다”(No one has ever worked through an injury without repeating it)고 말한 바도 있다. 반복은 상처를 넘어서는 힘이다. 올리브에게도 이 상처의 반복이 케빈과 잭이라는 타인을 통해 주체의 변화를 촉진한다. <강>에서 올리브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잭과의 관계를 통해 무조건적인 사랑과 이해를 경험한다. 이 장면에서는 반복되던 어두움 대신 햇살의 고요함, 방 안에 드리워진 밝은 빛 같은 시각적 은유가 등장한다. 이로써 앞서 반복되던 어두운 감정은 새로운 층위로 전환된다. 차이의 반복은 진정으로 주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래서 속편 『다시, 올리브』는 아주 많이 바뀐 올리브를 보게 된다. 그리고 올리브는 전자타자기를 구입한다. 이제 죽음을 앞둔 그녀는 기억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거의 행복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기억을 타자하는 그때가 올리브에게는 자신이 갇혀 사는 그물망이 걷히는 기분을 느끼는 유일한 순간이다.

1개의 응답

  1. […] 이 드라마의 소설 원작에 대한 내 잡감은 여기(반복, 상처를 돌파하다)에 간단히 메모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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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늘 당황스럽다 – No Final Goodbye님에게 덧글 달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