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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광, 『칸트와 푸코』

후기 푸코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길

이 책은 윤영광 교수가 그동안 집필한 칸트와 푸코에 대한 논문들을 모아 발간한 일종의 리서치 컴필레이션, 혹은 컬렉티드 에세이라 할 수 있다. 윤영광 교수의 푸코에 대한 접근 방식은 한국에서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한국 학계에서 푸코는 대체로 편협하게 해석되고 연구되는 경향이 강하다. 문학 연구자나 철학자들은 주로 전기 푸코에 집중하며, 정치철학자들조차도 계보학, 기껏해야 신자유주의 통치성 개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후기 푸코를 다루는 대목들이 나오긴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목조차 후기 푸코의 개념을 온전히 이해한 결과라기보다, 무지에 기반하여 차용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프랑스 철학 연구자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는 푸코를 소개하면서 후기 푸코의 주체성 연구를 본론이 아닌 부가적 장식처럼 덧붙이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 학계가 후기 푸코의 ‘주체성 철학’을 깊이 있게 다루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후기 푸코는 단순한 권력 분석을 넘어 윤리적 실천과 주체의 자기 형성을 강조한다(결국은 큰 범주의 권력분석에 포함되긴 하지만). 그러나 한국 학계에서는 구조적 정치 권력 분석과 집합적 사회운동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으로의 퇴행처럼 보이는 후기 푸코의 주체 개념(이것 또한 그들이 보기에 그렇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 불편함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둘째, 후기 푸코는 고대 그리스의 자기 배려 개념을 통해 주체의 형성과 윤리적 실천을 탐구하지만, 한국에서는 푸코를 단순한 현실정치의 권력 분석가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 이 문제의식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자기배려의 문제의식이 궁극적으로 권력의 문제라는 사실, 그리고 그 문제계가 현실정치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자체에 무지한 것이다. 사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고색창연한 그리스 철학을 현대의 복잡한 정치경제 구조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자기계발 같은 자기 배려 개념을 정치적 권력 구조 연구의 재료로 삼다니…” 하는 식의 태도를 곧잘 보이곤 한다. 다시 말해, 후기 푸코를 형식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나 논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학계에서 푸코 연구가 하나의 고정된 프레임 속에 갇혀 있음을 보여주며, 푸코를 단순히 지식-권력-통치성의 철학자(자기배려 문제계가 배제된 푸코)로 축소하는 것은 그의 사상을 오독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푸코를 연구자의 기존 관점에 맞춰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 후기 푸코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이해하는 이들의 사유도 점점 단순하고 피상적으로 변했고, 심지어 왜곡까지 가하면서 화려한 수사만을 앞세우는 이들이 횡행하게 되었다. 단순화된 푸코, 그리고 수사로 덮인 푸코—이러한 상황 속에서 윤영광은 푸코가 탐구했던 자기 배려와 파레시아의 철학적 계보를 깊이 있게 재구성함으로써, 후기 푸코뿐만 아니라 푸코 사상 전반에 걸쳐 지속된 주체성 탐구를 보다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마련했다. 그는 후기 푸코로 가는 세밀한 길들, 그러니까 푸코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길을 찾아내 온전하게 보여주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탐구들이다. 이 고지를 맨 처음 도달한 한국의 유일한 푸코주의 철학자가 아닐까. 물론 다시 다른 길을 찾아 나서고 있겠지만.

푸코 안에 칸트, 통치성과 자기배려의 문제계

푸코가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언급한 첫 해는 1978년이다. 이 해는 푸코에게 여러모로 이상하면서도 새로운 해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 해였기 때문이다. 그런 해가 캉길렘의 말처럼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안전, 영토, 인구’에서 통치성이라는 주제가 등장한 해이기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이 그러한 것이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 강의는 그의 사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순간이었다. 1977~78년 강의를 재개하며 국민을 관리하는 안전 테크놀로지를 탐구하려 했으나, 강의 도중에 그는 강의 제목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탐구하고 싶은 것은 ‘통치성의 역사’라고 밝혔다. 과거나 그 이후에도 그는 연구 과정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지식의 고고학』과 『성의 역사』에서도 기존 계획을 뒤엎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 바 있다. 『안전, 영토, 인구』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강의 진행 중에 일어났으며, 3강까지 안전장치에 대해 논의하던 그는 4강부터 마키아벨리를 언급하며 본격적으로 통치성 개념으로 나아갔다. 결국, 이 강의는 푸코가 권력 개념에서 통치성 개념으로 이행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연구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으로 자리 잡았다. 그 변곡점에 바로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가 자리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외부성의 차이와 반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존의 권력관계라는 외부성에 전착했던 그는 이제 ‘주체의 형성’과 ‘자기와 자기의 관계’(사실은 새로운 권력관계라고 해야 한다)라는 ‘바깥’-새로운 외부성-을 발견하는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푸코에게 가장 확실한 철학적 영향을 준 인물은 하이데거와 니체다. 특히 하이데거는 푸코를 니체로 인도한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푸코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거나 비판적으로 다루었지만, 그의 사유에 깊이 스며든 철학자로 칸트와 알튀세르를 꼽고 싶다. 사실 알튀세르의 ‘장치’ 개념은 푸코의 전 저작에 스며들어 있으며, 푸코가 무의식적으로 벗어나려 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알튀세르는 푸코의 저작을 높이 평가했지만, 때때로 푸코가 자신의 개념을 도용했다고 불쾌해하기도 했다. 실제로 푸코는 알튀세르의 개념을 은밀하게 차용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나는 푸코의 사유에서 알튀세르의 ‘장치’ 개념이 어떻게 전유되었는지를 추적하면 아주 색다른 흐름이 있을거라고 말하곤 한다. 이는 권력관계에 천착한 계보학 탐구 시기 뿐 아니라, 후기 푸코의 주체성 탐구에도 영향을 깊게 미친 개념이다. 주체 그 자체가 하나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헬렌 스캔들 이후 푸코만큼 알튀세르를 위안해준 철학자도 없었다. 알튀세르는 푸코가 병원에 올 때마다 즐거워했고, 늘 다음 만남을 기대했다)

푸코와 칸트의 관계는 종종 경직된 방식으로 이해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초기 푸코는 칸트를 비판적 대상으로 삼았고, 후기 푸코는 칸트의 계몽 개념을 수용하며 입장을 전환했다고 해석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자는 하버마스로, 그는 후기 푸코가 계몽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 초기의 반(反)계몽적 태도와 모순된다고 주장하며, 결국 푸코가 자신이 비판했던 근대 철학 담론으로 회귀했다고 본다. 이렇게 하이데거나 니체와의 관계는 비교적 일관되게 해석되는 데 비해, 칸트와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후기 푸코는 자신의 작업이 특정한 철학적 전통에 속한다면, 그것은 일관되게 “칸트의 비판적 전통”일 것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일종의 칸트주의자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본다면, 푸코는 단순히 칸트를 수용하거나 거부한 것이 아니라, 칸트에 대한 독해와 극복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형성해 나갔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윤영광의 표현대로, 핵심은 표면적으로 상반되어 보이는 두 시기의 평가 사이의 단절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푸코의 비일관성을 문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두 시기의 칸트 해석 모두에 내재한 연속성을 발견할 것인가의 문제다(*푸코의 사유역사를 연속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단절과 불연속의 철학자, 푸코의 사유에 반하는 푸코 분석이라고 핀잔을 줄 수 있다. 이 문제는 연속적인 불연속이라는 말로 대신할까 한다. 아마 이 이야기만도 오래해야 할 일) 나는 언제나 후자의 입장을 견지해 왔으며, 윤영광의 논문들은 이를 분명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것은 1978년 푸코가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언급하면서 ‘통치성의 역사’로 사유를 전환시키고, 다시 1980년대 죽기 직전까지 자기배려와 파레시아의 문제계로 급작스럽게 바꾼 복잡한 지층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바깥의 안쪽, 삶에서 불어오는 힘

윤영광 교수가 분석했듯이, 우리에게는 세 개의 칸트가 있다. 정통 칸트, 푸코의 칸트, 그리고 들뢰즈의 칸트. 여기서 우리는 윤영광 교수의 논의를 통해 푸코의 칸트와 들뢰즈의 칸트가 결합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서술을 참고하여 나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해 보면, 그 결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엉뚱하지만 이렇게 질문하면서 시작해보자.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가?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삶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가? 나는 늘 ‘삶’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닿을 때마다 사유가 멈추는 경험을 한다. “잘 살아야 한다.” “어찌 되었든 살아내야 한다.” 같은 당위가 모든 사유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삶을 관찰하고, 그것이 어떠한지 인식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에 이르면, 그 순간 삶은 마치 나의 사유를 조롱하듯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생각한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다. 사유는 결코 삶을 완전히 포착할 수 없다. 삶은 사유와 무관하게 스스로 생동감이 넘친다. 삶은 사유가 추론하는 것과 무관하게 돌발적이고, 심지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내가 보기에, 삶은 비(非)사유의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고통스럽고 우울하며, 사회와 환경에 휘둘려 더 이상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느끼고 그렇게 믿는다. 왜 그런 것일까? 사실, 일반적으로 사유는 기존의 지식과 권력의 형식 속에서 발생한다. 푸코는 권력을 단순한 지배의 도구로 보지 않고, 지식과 현실화의 조건을 구성하는 비형식적 힘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권력은 그 자체로는 보이지도, 직접 말해지지도 않지만, 특정한 방식으로 ‘보고 말하게 만드는 힘’, 즉 지식과 사유를 형성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것이 바로 푸코의 다이어그램 개념이 설명하는 바였고, 동시에 칸트의 도식 기능과도 유사한 역할을 했다. 권력이 현실화되면서 지식과 사유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계보학의 장치 개념을 따라간다면 권력관계로부터 생성된 지식과 사유가 삶의 생동에서 우리를 분리하여 그런 수동적인 정서와 믿음으로 몰아 넣고, 예측가능하게 움직여 나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사유가 사유의 이미지가 전제하는 자연적 사유, 항상 일치하는 공통감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계보학적 푸코에 따르면, 내부성(l’intériorité)과 외부성(l’extériorité)의 관계는 기존의 권력적 형식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는 이러한 외부성을 언표와 가시성이라는 외부적 형식 속에서 분석한다. 즉, 외부성이란 힘관계들이 현실화되는 구체적 배치의 환경이자, 그것을 규정하는 형식이다. 내부성은 본질적으로 텅 비어 있으며, 권력 관계로 이루어진 외부성이 그 빈 공간을 채우면서 지식과 사유가 형성되고, 결국 권력 관계의 구조에 따라 주체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부성 개념은 구조주의부터 푸코까지 너무 익숙하게, 심지어 자동적으로 활용되어 온 사고 도식이다.

그러나 내부성과 외부성의 관계를 단순히 “내부는 비어 있고, 외부(권력 관계)가 이를 채운다”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푸코 사유의 보다 심층적인 의미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이 경우 주체는 구성적으로 재정립할 계기를 마련하지만 여전히 변치않는 권력관계 영향하에 놓인 예속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바깥’(le dehors)의 개념은 기존의 외부성 개념과 구별되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개념이다. 바깥은 단순히 외부성이 내부를 채우는 구조적 메커니즘이 아니라, 기존의 권력적 형식과 외부성 자체를 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차원을 지시한다. 즉, 바깥은 기존의 외부성 개념과도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개념이며, 단순히 내부성을 채우거나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성을 규정하는 외부성 자체를 넘어선 차원에서 사유되어야 한다. 이는 기존의 권력 구조가 만들어내는 형식적 관계들을 해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바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들뢰즈에 따르면, 바깥은 단순한 외부가 아니라, 지층화되지 않은 순수한 차원, 즉 기존의 힘 관계와 형식적 배치를 초과하는 차원이다. 그리고 푸코가 후기 작업에서 강조한 ‘주체의 자기 형성’이란 바로 이 바깥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권력은 주체를 일정한 방식으로 생산하는 힘이지만, 주체가 자신을 변형하는 것은 권력 구조의 내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부터의 힘을 통해 가능해진다.

들뢰즈는 이것을 “바깥을 구부려서” ‘안쪽(lededans)’을 만드는 일로 설명한다. 배가 물 위를 떠다니고 있을 때, 바람은 배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돛을 펼치면 바람이 돛을 밀고 배를 움직이게 한다. 이때 바람은 단순히 배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 안에서 작용하는 힘이 된다. 돛이 바람을 받아서 배를 움직이게 하지만, 바람이 배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바람은 여전히 바깥에서 오지만, 동시에 배의 내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된다. 이렇게 바깥에서 온 것이 안쪽에 영향을 주면서도 완전히 안쪽이 되지 않는 상태가 바로 “바깥의 안쪽”(le dedans du dehors)이다.

그러면 도대체 그 바깥은 무엇일까. 신비로운 천국이 다른 곳에 있기라도 하는 걸까. 그 바깥을 우리는 스스로 신비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혹시 우리 주변, 우리 곁에서 늘 생동감이 넘치고, 늘 돌발적이며, 늘 무의미했던 그것이 있어 왔던 것은 아닌가. 내 생각으로는-내가 끊임없이 주장해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들을 귀가 없나니- 이 바깥은 바로 ‘삶’이다. 삶에서 불어오는 힘. 사유의 돛을 펼쳐서 새로운 대양으로 나아가게하는 바깥에서 안쪽으로 불어온 힘. 그것은 삶이다. 삶은 특정한 권력적 지층과 다이어그램 속에서 포섭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형식을 무력화하고 새로운 양식을 창출하는 힘이다. 따라서 푸코에게 바깥과의 관계는 곧 삶과의 관계이며, 주체화란 삶의 힘을 통해 기존의 권력적 형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바깥의 힘이 곧 삶의 힘이며, 이는 기존의 권력 구조에 의해 포획되지 않는 순수한 생기의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삶은 사유로 완전히 포착되지 않으며, 오히려 삶은 사유의 바깥에서 그것을 움직이는 힘이다. 무엇을? 자기와 자기의 관계를.

이 삶-바깥의 사유에서 보면, 푸코가 칸트적 전통을 계승했다고 보는 해석과 푸코가 철저히 비일관적이었다는 해석은 서로 충돌하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일 수도 있겠다. 푸코가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고정된 체계로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는 단절과 불연속을 통해 칸트를 해체하면서도 동시에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푸코는 칸트 철학을 일관되게 계승했다기보다는, 칸트의 문제의식을 특정한 맥락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 괴물적으로 승계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윤영광은 이 부분을 아주 치밀하게 재구성해내고 있다. 핵심적인 논문 중 하나인 “푸코-칸트주의 정립과 궤적”은 그래서 읽을 만하다.

그러나 푸코는 머무르지 않고…

지금까지 이야기한 바대로 바깥의 영향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모든 촉발은 비인간적 과정에서 발생하며, 인간의 의지 자체를 기원으로 새로운 지평을 찾아나설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오로지 비인간적 흐름 속에서만 완성된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단순히 우연에 몸을 맡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지는 무의미해지고, 주체는 완전히 소멸한 채 흐름에 휩쓸리는 존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깥에 휩쓸리는 주체, 결국 권력관계에 휩쓸리는 주체와 다를 바 없는 주체가 되어 버린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비사유, 비인간, 바깥의 무한한 힘이 가지는 촉발역량을 완전히 긍정하면서도, 여전히 그 잠재적인 힘이 현실적인 힘으로 ‘구성’하게 하는 실증적 과정과 그 역량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여전히 남겨두게 된다. 무엇이 그 바깥의 힘을 알아채고, 그 바깥의 힘으로 나와 공동체를 변화시키느냐. 과연 어떻게 견고한 권력관계 안에서도 저항을 생성시키는 바깥의 안쪽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지속적으로 생산해 낼 것이냐, 나의 바깥의 안쪽-즉, 내 구도라면 삶-바깥에서 얻어낸 우리의 역량을 기존 권력관계의 구도에 소모되지 않게 하면서 우리의 역량을 초험적으로 사용할 것이냐.

오히려 나는 푸코와 들뢰즈의 사유를 실천적 의미에서 이렇게 비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단순히 홀로 자율적으로 자기 자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 속에 남아 있는 바깥의 흔적을 통해 자기 변형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이다. 후기 푸코의 ‘자기 배려’(souci de soi) 개념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바깥에서 온 힘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 내부에서 어떻게 가공하고 훈련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후기 푸코가 <주체의 해석학>으로 부터 <자기통치와 타자통치>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자기배려와 파레시아를 탐구하게 된 것은 고대인들이 바깥의 흔적을 찾는 수련기술을 어떻게 구사했는지, 그리고 그 수련의 결과 진실의 용기를 어떻게 발산하게 되는지를 경험적으로 재구성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탈구축의 구축‘에서 바로 ‘구축‘ 쪽에 좀더 강조점을 가지고 진행된 실천적 탐구 결과(아니, 단지 시작)가 아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푸코의 ‘계몽’은 그래서 영성적이면서도 정치적이고, 개별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개념이 될 가능성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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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아래 책에 대해서는 제가 다른 글에서 간단한 서평을 써두었습니다. 👉주체의 변형, 삶-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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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주체 분열, 불온한 사유가 들러붙다 – No Final Goodbye님에게 덧글 달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