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비치 보이스, 『Smiley Smile』(1967), “Good Vibrations”(1966)

우리는 늘 해변을 비추며 상투적으로 튼 “Surfin’ U.S.A.”(1963)로 비치 보이스를 기억한다. 이 시기의 비치 보이스 노래들은 대부분 밝고 경쾌하거나 감미롭고 낭만적이다. 로큰롤 리프가 돋보이는 “Fun, Fun, Fun”(1964), 왈츠 리듬의 “Surfer Girl”(1963) 등은 이른바 캘리포니아 사운드의 전형을 들려준다. 비치 보이스는 미국 청춘 문화의 낙관적 상징이었으며, 노래 주제도 서핑, 자동차, 여자친구 등 즐거운 일뿐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밥 딜런, 조앤 바에즈, 비틀즈는 반전과 시민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1960년대 미국 사회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흑인해방 운동이 근간을 뒤흔들었고, 베트남 전쟁으로 반전운동이 점점 격렬해졌으며, 히피 문화와 저항의 대중문화가 주도권을 잡았다. 이에 호응하여 록 뮤지션들은 단순한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사회적 양심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딜런, 존 레논, 지미 헨드릭스, 제퍼슨 에어플레인이 모두 그 예다. 이런 상황에서 비치 보이스처럼 노래하는 것은, 뭐랄까, 조금 재수 없다고 해야 할까. 내가 알고 있는 밴드들 중에서 가장 탈정치적 유토피아의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중에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독립기념일 공연에 비치 보이스를 공식 초청한 사실까지 연결해 보면, 그들을 단연 보수적 밴드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Pet Sounds』(1966) 이후에는 팝 음악을 ‘예술적 앨범’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비치 보이스는 단순한 캘리포니아 밴드가 아니라, 실험적이고 철학적인 사운드 아티스트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틀즈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God Only Knows”(1966)는 단순 러브송이 아니라 보컬 카논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아름다운 노래의 흔적을 남겼다. 음악에서 카논은 한 성부가 멜로디를 먼저 부르면 다른 성부가 조금 늦게 들어와 같은 멜로디를 따라가는 형식, 즉 일종의 돌림노래를 말한다. 비치 보이스는 이를 목소리로 구현했는데, 이른바 보컬 카논이다. “God Only Knows”의 후반부에서는 첫 번째 보컬이 “God only knows what I’d be without you”(너 없이는 내가 무엇이 될지, 신만이 알 뿐이야)라고 부른 뒤, 두 번째 보컬이 조금 늦게 같은 구절을 이어받고, 이어 세 번째 보컬이 합류한다. 이렇게 여러 파트가 시차를 두고 같은 멜로디를 부르며 겹치고 얽히면서, 마치 음악적 파도가 번져 나가는 듯한 울림을 만든다. 이는 초기 서프 록에서 바다의 이미지를 성찰적으로 발전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가사 속 “만약 네가 나를 떠난다면 삶은 여전히 이어지겠지, 믿어줘 하지만 세상은 내게 아무 의미도 주지 못할 거야 그렇다면 살아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라는 구절은 그 울림을 한층 강화한다.

또한 “Good Vibrations”(1966)은 더욱 강렬하게 실험적이다. 브라이언 윌슨은 곡을 한 번에 쓰고 연주·녹음하는 대신, 자신의 기분에 따라 짧은 ‘모듈(Module)’—그가 ‘feels’라 부른 파편들—을 여러 버전으로 만든 뒤, 나중에 테이프를 물리적으로 잘라 붙여 최종 곡을 조립했다. 이 작업은 여러 스튜디오를 오가며 진행되었기 때문에, 각 절과 후렴, 브릿지의 공기와 음색이 서로 다르게 들린다. 위의 두 곡은 모두 파편적 요소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당대의 철학적 시각과 일치한다. 여러 모듈이 모여 하나의 조립품처럼 창조물을 구성한다든지, 카논을 통해 반복이 일종의 차이를 만들어낸다든지 하는 실험들이 그 예다.

비치 보이스가 보여준 캘리포니아 청춘 낙관주의는 사실상 ‘안정된 중산층 신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에 몰두했던 브라이언 윌슨 개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불안, 정신적 고통을 안고 있었고, 그것이 음악 속에서 섬세한 감수성과 실험으로 표출되었다. 겉으로는 체제 순응적 밴드, 내면에서는 불안정한 개인이라는 이중성은, 보수의 탈을 쓰고 실험을 가능하게 한 배경이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질문에 봉착한다. 첫째, 주체의 정치적 의식은 실험적인 예술 의식과 함께하지 않아도 가능한 걸까?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드라는 장치에 구속되지 않고서도 개인-주체는 지속적으로 실험을 이어갈 수 있는 걸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