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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튼 마살리스, 『Black Codes』(1985), “Blues”

무라카미 하루키는 윈튼 마살리스의 연주를 두고 “절박한 영혼의 욕구 같은 것이 전달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2015), 219쪽). 그는 마살리스가 “영혼의 지하실 없이 지상에서 연주하고 있는 형국”이라고도 한다(같은 책, 222쪽). 힘은 들어갔으나 음악은 겉돈다고 평가하며, 심지어 윈튼에게 인정받은 연주자들의 음악도 ‘체육회’용의 근육질 음악이라고 조롱한다(같은 책, 224쪽). 급기야 마살리스의 연주를 두고 “괜스레 전희만 능숙한 남자 같다”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같은 책, 222쪽). 이쯤 되면 속된 말로 막가자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하루키가 내놓는 이유 자체는 일견 그럴듯하다. 그는 윈튼이 재즈의 자발성을 정교한 음악구조의 ‘정합성’으로 억누르고 있다고 본다. 머릿속에 정밀한 음악을 사전에 꼼꼼히 입력해둔 채 연주를 시작하고, 실제로 밴드로 하여금 한 음도 틀리지 않게 연주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MBTI로 치자면 완벽한 ‘T’이자 ‘J’이다. 사실 재즈의 본성을 ‘자유로움’에 두는 입장에서 보면 이는 치명적인 약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직접 들은 윈튼 마살리스는 그렇게까지 조롱받을 연주자가 아니다. 그의 앨범 『Black Codes』(1985)는 마살리스가 1960년대 모던 재즈의 어법, 특히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정신을 계승하여 만든 음악이다. 이른바 1980년대 네오보프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 그런데도 이 앨범은 복고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제프 테인 왓츠의 정교한 드럼과 케니 커크랜드의 현대적 피아노가 원리주의자 마살리스의 치밀함과 만나면서 80년대의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내가 보기엔 하루키의 ‘정합성’ 비난은 마살리스의 격렬한 탐구심을 엉뚱하고 모욕적으로 지적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윈튼의 친형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색소폰과의 대화, 리듬 섹션과의 교차, 그리고 론 카터를 데려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뒷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그의 음악적 리더십과 탐구심을 더 높이 평가한다.

또한 ‘블랙 코드’라는 정치적 제목의 직설성도 내 눈을 끌었다. 퀸텟 안에서 혼 섹션과 리듬 섹션의 교차, 리듬의 정지와 재개, 파트 간의 대화 등은 마치 권력 교체처럼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다. 젊은 마살리스는 정통을 가지고 정통을 넘어 권력을 교체하려 한 젊은 왕자였다. “Blues”를 들어보면, 결국 그는 재즈 그 자체로 자신을 정립하려 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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