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망엘스도르프, 『Trombirds』(1972), “Trombirds”
트롬본은 곰곰이 발성 원리를 살펴보면 인간과 비슷하다. 연주자는 입술을 ‘버징(buzzing)’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떨리게 한다. 입술이 떨리면 작은 공기 파동이 금속관 안으로 들어가고, 관 안의 공기 기둥이 진동하면서 소리가 난다. 이는 마치 인간의 성대와 같다.
트롬본은 슬라이드를 앞으로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공기 기둥의 길이를 바꾼다. 관이 길어질수록 저음이 나고, 짧아질수록 고음이 난다. 저음일수록 헤르츠 값이 작고, 고음일수록 헤르츠 값이 크다. 이렇게 트롬본은 슬라이드로 음정을 바꾸어 단일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이지, 피아노처럼 동시에 여러 음을 울려 화음을 직접 표현하는 악기는 아니다. 이는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채 하나의 인격으로 살아가는 인간과도 같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가고, 매일 같은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 잠드는 삶. 동시에 두세 가지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베르트 망엘스도르프는 연주자가 트롬본을 불면서 동시에 목소리로 다른 음을 내는 방식을 만들어냈다. 이때 트롬본에서 울리는 소리와 목소리가 중첩되며 실제로 두 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들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멀티포닉스(multiphonics)의 원리다. 한 음을 불면서 그보다 항상 높은 또 다른 음을 노래 부르듯 연주하고, 트롬본 사운드에 보컬 음색을 더하는 것이다. 취주음과 보컬음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음들을 조합해 연주하고, 그 과정에서 동시 3성, 4성, 5성 화음을 만들어낸다.
단선율 악기였던 트롬본이 스스로 화음을 형성하며 새로운 차원의 표현력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의 주체가 다성적 주체로 나아가는 상징적 장면처럼 보인다. 하나의 몸과 호흡에서 동시에 여러 목소리가 울려 나오니, 이는 주체가 고정된 단일성이 아니라, 분열되고 중첩되며 다층적인 존재임을 드러내는 예술적 실험과도 같다. 즉, 단일 주체가 스스로 내부에 다성성을 구현하는 행위와 같다. 그러나 이 내부는 외부와의 결합 속에서만 가능하다. 망엘스도르프의 멀티포닉스 역시 트롬본 하나만으로는 완전한 다성적 주체가 될 수 없다. 보컬이라는 외부 요소와의 결합을 통해서만 다성적 주체로 발돋움할 수 있다.
타이틀곡 “Trombirds”는 말 그대로 트롬본의 ‘trom’과 새의 ‘birds’를 결합한 말장난이다. 그는 트롬본의 지저귐을 멀티포닉스로 표현해냈다. 트롬본 새의 지저귐을 들으며 마치 천국에 도달할 것 같은 다성적 진실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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