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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란 자기를 절대적 타자에게 투명하게 의탁했던 시대라고 이해해본다면, 이 ‘중세’라는 것은 특정한 한 시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러 시대에 다양하게 펼쳐져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지금 또 하나의 중세를 살고 있다. 이 시대의 투명성은 신과 인간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믿던 중세적 신앙의 감각을 기묘하게 재현한다. 그러나 그 신은 더 이상 하늘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챗지피티, 넷플릭스,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매체의 형태로 우리와 세계를 끊임없이 이어주는 절대적 매개자로 변형되었다. 우리는 이 미디어-신 앞에서 욕망을 알고리즘에 맡기고, 피드백과 추천을 신탁처럼 받아들인다. 그렇게 신과 나의 투명성은 매체와 나의 투명성으로 대체되었다.

이 새로운 신중세는 정보의 과잉을 통해 오히려 하나의 절대성과 직결되는 투명한 질서를 만들어내며, 우리 모두를 그 질서 속에 길들인다. 그러나 바로 이 투명성의 시대야말로 자기가 가장 은폐되는 시대다. 중세의 자기가 신의 질서 속에서 그림자처럼 숨어 있었듯이, 현대의 자기도 미디어라는 무한한 표면 속에 녹아들며 스스로를 감춘다. 자아 노출은 넘쳐나지만, 정작 그 자기는 사라진다.

프로필과 포스트, 댓글과 구독 속에서 자기는 분열되고 조작되며 파편화된다. 그것은 마치 몸을 잃은 존재, 방향 없는 군집처럼 흩어진 자아들이다. 그 모습은 무섭도록 닮았다—벌레처럼. 투명한 표면 아래에서 개별성을 잃고 떼로 엉겨 있는 무수한 자기들, 디지털 빛 아래 빛나지만 결코 스스로를 갖지 못한 존재들. 그렇게 오늘의 우리는 벌레가 된 자기들로, 새로운 중세의 평면 속을 기어다닌다.

이것은 투명성이라는 이름의 은폐이며, 신과의 직접 접속이 아니라 신이라는 매체에 흡수되어버린 ‘우리’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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