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빵 굽는 타자기』

이 에세이의 첫 단락은 다음과 같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 번 허리띠를 졸라매는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늘 쩔쩔맸고,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늘 작가들이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며 글을 쓰는지 궁금해했다. 사실 책을 내보면 알 수 있지만, 책으로 먹고사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부분의 작가는 이중생활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글을 쓴다. 다른 본업이 있고, 그 틈 속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어 글을 쓰는 것이다. 폴 오스터는 이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오스터는 이런 이중생활 자체를 거부하며 살았다. 거부한다기보다, 그것을 체질적으로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천생 전업 작가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폴 오스터는 내가 알고 있는 작가 중 나쓰메 소세키 다음으로 돈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 작가인 것도 같다. 나는 어쩐지 그런 작가들에게 마음이 가곤 했다. 그는 작품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늘 자금에 쪼들렸고, 종종 부유한 후원자들에게 자신의 글을 팔기 위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독회에 나서곤 했다. 하지만 그는 후원자들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 자주 위축되곤 했다. 아마 그가 처세에 전혀 능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유머나 감정은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형식적인 박수만 남은 자리에서 그는 그저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떤 장면들은 예술가로서 폴 오스터가 겪은 절망과 자존감 붕괴의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연극 공연을 앞두고 희망을 품었던 작품이 배우의 병과 그로 인한 컨디션 저하로 결국 형편없는 무대가 되고 마는 과정들. 오스터는 자신의 작품이 관객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본다. 아마 그순간 그는 작가로서의 무력감과 자기 회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공연의 실패를 잊기 전에 곧바로 책상 앞에 앉아 희곡을 다시 손질한다. 공연의 실패를 배우나 연출가 탓으로 돌리기보다, 스스로의 글을 근본부터 뜯어고치는 책임을 감수했고, 너무 길고 산만한 구성을 과감히 잘라내며 표현을 다듬고, 한 인물을 제거하고 제목까지 바꾸는 대수술을 감행한다. 이렇게 완성한 개정판은 다른 희곡들과 함께 책상 서랍에 묻어두고, 다시는 꺼내지 않을 생각이고, 실제로 그러했다. 절망 속에서도 타인의 인정을 바라지 않고 글을 마무리하는 장면은 그의 집요한 글쓰기 욕망과 예술에 대한 집념을 드러낸다. 실패한 텍스트조차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다시 고쳐보려는 이 태도는 오스터 특유의 존재론적 충실함이다.
이 이야기와는 별개로, 신기하게도 그는 야구 카드 보드게임을 고안해 실제로 투자자를 찾아 나선 적이 있다. 게임은 무척 재미있다(나는 실제로 재미있게 느껴졌다). 투수는 카드 한 장을 뽑는다. 빨간색 숫자 카드(다이아몬드나 하트의 A부터 10까지)는 스트라이크, 검은색 숫자 카드(클로버나 스페이드의 A부터 10까지)는 볼이다. 잭, 퀸, 킹 같은 그림 카드가 나오면 타자가 방망이를 휘두른 것으로 간주하고, 이때 타자도 카드 한 장을 뽑아 결과를 결정한다. 타자가 뽑은 카드가 1부터 9까지의 숫자 카드라면 아웃인데, 이 숫자는 수비 위치와 연결된다. 예를 들어 5는 3루수다. 이 카드가 검은색이면 땅볼, 빨간색이면 플라이볼이며, 플라이볼 중 다이아몬드는 뜬공, 하트는 라이너다. 외야수 위치인 7, 8, 9의 카드가 나왔을 경우엔 검은색이면 얕은 플라이, 빨간색이면 깊은 플라이다. 10은 단타, 잭은 2루타, 퀸은 3루타, 킹은 홈런이다. 예를 들어 타자가 스페이드 5를 뽑았다면 3루수에게 땅볼로 아웃되는 것이고, 하트 킹을 뽑았다면 홈런을 친 것이다.
물론 그는 이 게임도 사업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실패를 겪는다. 겨우 만난 투자자는 게임 시연이 시작되자마자 시큰둥하게 손을 내밀며 말없이 자리를 떴다. 오스터는 침묵 속에서 카드를 정리하며, 그 1~2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이었다고 회고한다.
내가 보기엔 폴 오스터의 액션 베이스볼은 간단한 트럼프 카드 규칙을 바탕으로 해 기술적으로 구현이 쉬운 게임이다. 웹 기반 미니게임으로 만들 수도 있고, 모바일 앱도 가능할 것이다. 랜덤으로 카드를 뽑게 하고, 간단한 애니메이션과 효과음으로 카드를 뽑을 때마다 야구 진행을 재현하면 충분히 몰입감을 높일 수 있다. 어쩌면 프로야구 브랜드와 제휴해 라이선스 게임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유명 선수의 이름이 들어간 카드 디자인을 만들고, 실제 팀을 반영해 실시간 리그로 확장하면…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오후가 다 가버렸다.
P.S. 글에 존 버나드 마이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10년전에 뉴욕에 갔을 때, 어느 미술관(미술관인지, 서점인지 뭔지 모르겠네. 이젠 오락가락)에 갔는데, 그에 대한 코너가 있어서 아주 짧게 본 기억이 난다. 이 분이 폴 오스터와 깊이 인연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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