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카레르, 『필립 K. 딕: 나는 살아 있고, 너희는 죽었다 1928-1982』


나는 오래전에 에마뉘엘 카레르의 『왕국』을 읽고 영감을 크게 받은 적이 있다. 그 에마뉘엘 카레르가 필립 K. 딕에 대한 매니아, 아니 그와 자신이 존재론적으로 동일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는 딕을 단순한 SF 작가로 보지 않았다. 그는 딕을 현실과 비현실, 자아와 타자,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존재론적 불안과 종교적 강박을 몸소 살아낸 예언자 혹은 광기의 순례자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는 필립 K. 딕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본다. 딕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평론이 아니라 자기 동일화에 가까운 집착이다. 딕은 끊임없이 ”우리가 믿는 이 세계는 실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유빅(Ubik)』, 『높은 성의 사나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같은 작품은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허문다. 카레르도 자기 소설을 그렇게 쓴다.
딕은 삶의 마지막 10년 동안 하느님과의 계시 체험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한다. 카레르 역시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다가 이후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의 내적 투쟁을 거치는데, 나는 그의 『왕국』을 읽고 어마어마한 영감을 얻었었다. 그는 믿음과 이성에 대해 굉장히 강렬한 탐구를 보여주는 드문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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