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하이데거는 우리가 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듣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듣기 때문에 귀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신체기관의 문제를 넘어, 존재방식이 사물의 조건이 된다는 근본적인 역전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우리가 건축했기 때문에 거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주할 수 있기 때문에 건축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존재의 방식, 즉 ‘사는 것’이 앞서고, 그 방식이 공간과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하이데거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알튀세르의 장치론에 독특한 반전을 가한다. 알튀세르에게서 장치는 주체를 구성하는 조건이자 배치이지만, 하이데거식 사유에서는 주체적 삶의 선이 먼저 흐르며, 그 삶의 방식이 장치라는 추상적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반유물론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살고 있음’이라는 존재론적·물질적 조건이 제도나 장치라는 상부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유물론의 급진화로 읽을 수 있다. 하이데거를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에게 유물론이 아주 그릇되게 존립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