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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저자’라는 개념을 생각하다가…… 문득 마르크스-엥겔스가 떠올랐다. 마르크스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엥겔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에는 ‘마르크스-엥겔스’가 하나의 이름처럼 불릴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20세기 초 루카치나 코르쉬 같은 이론가들은 이미 두 사람을 구분하려 했고, 엥겔스를 기계적 유물론이나 자연주의적 환원주의의 기원으로 지목하며 비판했다. 당시 그들에게는 두 사람을 하나로 보려는 의지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특히 소비에트 체제에서는 ‘마르크스-엥겔스’라는 통합된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했고, 두 사람은 하나의 이론적 주체로 묶이고 만다. 마치 모든 저작을 공동 집필하고 사유도 함께한 것처럼 구성되었고, 어느새 학교 교육, 정당 문헌, 이데올로기 교재 속에서 ‘마르크스-엥겔스’라는 이름은 하이픈 하나로 연결된 동격의 존재가 되었다.

무지했던 나 역시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늘 공동 저자로 활동한 줄 알았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읽은 책이 『공산당 선언』이었고, 그로 인해 그런 착각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비봉판 『자본론』이 처음 나왔을 때는 공동 저자로 엥겔스 이름이 왜 안 보이냐고 찾기도 했다. 무식하게도 말이다. (물론 2·3권은 엥겔스가 편집했으니, 그런 오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찾아보니, 2015년 개정판을 보니까, ‘엥겔스 엮음’이라고 표시해뒀더라, 잘 하신 것 같다)

마르크스는 사실상 생계 활동도 하지 않았고, 정치에도 깊이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 몇몇 동맹을 만들고 연설하거나 문건을 작성한 정도를 본격적인 정치 활동이라 하긴 어렵다. 반면 엥겔스는 부르주아로서 공장을 운영하며 마르크스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했고, 생전과 사후 모두 누구보다 정치에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마르크스는 대영박물관에 틀어박혀 공부하거나, 돈만 생기면 술 마시는 삶을 더 선호했다. 예전엔 그런 모습이 멋져 보였지만, 지금은 그의 사유와는 무관하게(이 점이야말로 정말 사유해볼 문제지만) 지긋지긋한 유형의 인간으로 느껴진다. 그런 사람에게 얽힌 엥겔스는 삶의 한편에서는 공장 운영에, 다른 한편에서는 마르크스의 뒷바라지에 매여 점차 그의 정신세계 안으로 흡수되며 결국 자기 자신을 녹여버리고 만다.

마르크스를 뒷바라지한 이후, 문필가로서의 엥겔스는 사실상 멈춰버렸다. 엥겔스의 대표적 저작으로 꼽히는 『자연변증법』, 『반뒤링론』은 이 시대의 글이 아니다. 군사 문제에 대한 논문들이 읽을 만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과연 그것들이 그리 높이 평가받을 만한 텍스트인지는 잘 모르겠다. 타인의 사유에 잠식당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엥겔스는 역사적으로 여실히 보여준다.

20세기에는 두 사람의 이름마저 하나로 묶였고, 먼 훗날에는 마르크스 사상을 왜곡한 인물로 비난받는 아이러니한 운명을 겪게 되었다. 더 쓸 생각이 있어서 쓴 글은 아니지만, 오늘 ‘공동 저자’에 대해 생각이 흘러가다 보니, 결국 마르크스와 엥겔스까지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었다. 과연 평등한 공동 저자란 게 존재하기는 할까?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잡아먹지 않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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