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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플레이스트>에서 모든 음악이 플랫폼과 기술에 ‘오염’된 모습을 보면서(사실 이 관점은 이 드라마에서 한 에피소드의 관점으로 등장하는 스포티파이의 CTO가 생각한 바이다), 이제는 거의 모든 영역이 AI에게 ‘오염’되어 버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이제 모든 글이 AI에 의해 ‘오염’되었다고들 말한다. 요즘 AI가 보여주는 ‘효능감’을 생각해보면, 그 말에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그 진단에는 선후가 전도된 오해가 있다. 사실 우리의 정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오염되어 있었다. 문자적 표절 이전에, 글은 이미 타인의 사유에 의해 표절되고 잠식된 정신 위에서, 허영의 쾌락을 통로 삼아 타인의 사유를 반복하며 문자로 복제해왔다. 글은 언제나 타자의 사유를 자신의 문장으로 은밀히 옮기는 작업이었고, 그 과정을 통해 이미 오염되어 있었던 것이다. AI는 단지 그 오염의 구조를 더 노골적이고 정밀하게 드러내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오염’이야말로 사유와 글의 본질이었는지도 모른다. AI는 그것을 투명하게, 숨김없이 드러내 보일 뿐이다.

더 나아가 AI는 언어를 단지 부유하는 기표들의 통계적 배열로 다룬다. 이는 구조주의의 핵심 명제—의미란 기표들 사이의 관계일 뿐이라는 주장—를 역설적으로 증명해낸다. 그러나 그 증명은 동시에, 구조주의가 언어에 부여했던 심오함과 무의식의 깊이를 함께 붕괴시킨다. 언어는 더 이상 인간 정신의 중심이 아니다. 그것은 조합 가능하고 반복 가능한 기호들의 메커니즘, 복제 가능한 절차적 장치일 뿐이라고 강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주체를 이미 부정했던 구조주의는, 그 점에서 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맞음’은 결과적으로 언어를 탈중심화시키고, 구조주의라는 자기 자신마저 해체해버리는 것으로 귀결됨 셈이다. 맞지만 맞지 않고, 맞지 않지만 맞다.

이런 맥락에서 AI가 사고의 방식을 바꾼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복제와 재생산의 논리 속에 살고 있었다. AI는 단지 그것을 아무런 위장도 없이, 통계적 배열이라는 방식으로 가공 없이 보여줄 뿐이다. AI로 인간이 새로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AI로 사고의 변화란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점점 복제를 통해 반복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을 뿐이다. AI는 그 복제의 욕망을 더 선명하게, 더 찬란하게, 더 빠르게 그러나 더 공허하게 표면화한 존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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