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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 Y. 데이비스 , 『여성, 인종, 계급』,

D. H. 로렌스의 시 「환희에 찬 주검」은, 차이를 지닌 두 존재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오며 상처와 오해를 겪고, 결국 함께 머무르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당신은 당신 방식대로, 난 내 방식대로 우린 그렇게 살아왔지요. / 당신의 사려없음에 익숙한 당신 지인들은 그것에 상심했고 / 내가 무심했던 사람들도 나의 배려에 상관없이 상처받았지요. / 하지만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분명하게 / 우린 나름의 방식을 고집해왔고 마침내 우리 서로 만나 / 여기 전망 좋은 윗방에 함께 있잖아요.” 나에게 이 시는 단순한 화해의 정서를 넘어,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정치적 자세를 뜻한다. “당신은 당신 방식대로,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왔지요”라는 말처럼, 서로의 방식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각자의 방식을 고집한 끝에 함께하게 된 연대의 서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흑인 여성 노예의 삶은 그러한 차이를 인정받을 기회조차 없었던 극단의 현실을 보여준다. 백인 사회는 여성을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여겼지만, 흑인 여성은 노동과 출산의 도구로만 취급되었다. 그녀들은 남성과 똑같이 농장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고,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일 때에는 노동력이 줄어든 것으로 간주되었다. 아이는 ‘1/4명’으로 계산되었으며, 여성의 인격은 무시된 채 경제적 단위로만 존재했던 것이다. 이처럼 흑인 여성은 여성, 흑인, 노동자라는 삼중의 정체성 아래서 착취당했다. 강제 노동의 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끊임없는 성적 폭력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녀들은 백인 남성에게 노동력과 성적 자원이라는 이중의 대상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한편, 노예제 반대 운동에 백인 여성들이 참여하면서 그들의 정치적 각성이 시작되었다. 억압받는 흑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행동은, 동시에 백인 여성 스스로가 권력 구조 속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했다. 이는 예컨대 친구가 부당한 처벌을 받는 것을 목격하고 교사에게 항의하면서 처음으로 권위에 저항하는 법을 배우는 학생의 경험과도 유사하다. 가정의 억압과 노예제라는 외부 억압의 유사성을 깨달은 백인 여성들은 점차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연대는 단순히 병렬적인 억압의 투쟁이 아니라, 억압 구조의 두 축이 서로 얽혀 있음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림케 자매는 흑인의 자유 없이는 여성의 자유도 있을 수 없으며, 그 반대 또한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들은 억압의 구조를 직시하며, 이중의 해방만이 진정한 자유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앤젤리나 그림케의 “나는 니그로와 동일시되고 싶다”는 발언은 그러한 인식이 담긴 급진적 선언이었다. 이는 프루던스 크랜들이 흑인 아동의 교육을 위해 싸운 구체적 실천과도 맞닿아 있다.

물론 연대의 실천이 언제나 굳건했던 것은 아니다. 흑인 남성에게 먼저 참정권이 주어졌을 때, 스탠턴과 앤서니는 흑인들보다 백인 여성의 권익이 뒤로 밀렸다며 격렬히 반발했다. 스탠턴은 문명화된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보다 참정권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명백히 인종주의적 우월주의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흑인의 참정권은 생존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그는 “투표권 없이는 흑인은 여전히 노예”라고 선언하며, 정치적 권리를 통한 실질적 해방의 필요를 강조했다.

로렌스의 시 「환희에 찬 주검」의 마지막 연은 절정에 이른다. “우리가 춤출 때 / 서로의 통로인 당신의 눈은 내 모든 것을 삼켜버려요 / 우리가 춤출 때 / 난 당신, 아, 활짝 핀 당신을 느껴요! / 오로지 함께 춤춘다는 것, 예민하고 하얗게 무구한 / 두 존재들이 함께 있다는 승리감에 가슴 벅차요.” 이 시는 살아 있는 몸, 감각하는 존재, 춤추는 연대에 대한 찬가처럼 보이지만, 제목은 그 모든 것을 ‘죽음’으로 덮는다. 이는 단순한 반전이라기보다, 생명과 죽음 사이의 묘한 변증법을 암시한다. 주검은 낡은 자아의 죽음이며, 억압적 질서의 종말이다. 반면 환희는 새로운 존재 방식의 탄생이며, 연대와 해방의 시작이다. 즉, 기존 질서 속의 ‘나’가 죽어야 비로소 새로운 ‘우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 ‘죽음’ 없이 ‘춤’도, ‘천국’도 없다. 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메시지이다. 여성에게 있어 ‘죽음’은 가부장적 역할과의 결별이며, 인종적 타자에게는 제국주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는 주체의 탄생이고, 계급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성과 효율성의 논리를 벗어난 몸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이 교차하며, 새로운 주체로 해체되고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 책은 여러 주체들이 각자의 길을 가면서, 서로에게서 배우고, 급기야 각자 자신의 주체를 바꾸어가는 대서사시이다. 환희에 찬 주검들이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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