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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회계사가 필요하다

데리다는 자신을 문학적인 데리다로 인식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철학적인 데리다라고 하며 문학적인 수용을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싸움에 찬물을 끼얹듯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의 탈구축적 탐구의 ‘가장 고유한 장소’, 또는 ‘자기 고유의 장’이 만일 있다면, 그것은 철학도 문학도 아니고, ‘법=권리, 법, 정의의 문제계’에 관계되는 로스쿨일 것이라고.

나도 그와 같이, 감히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푸코의 자기배려 철학이 움직이는 가장 고유한 장소, 또는 자기 고유의 장이 ‘만일 있다면’(사실 데리다도 실제로 고유한 장소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순수 철학도, 순수 정치학도 아니고, 조직을 구성하고 시장에서 싸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곧 ‘관리, 통치성, 자기 테크놀로지의 문제계’에 관계된 MBA일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 나아가, 그것이 더 정확하게 드러나는 곳은 마케팅도, 인사관리도, 생산관리도 아닌, 바로 재무관리라고도 말하고 싶다. 재무관리는 시장과 시장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기하학적 구조뿐 아니라, 그 구조의 엔진 작동 방식을 일반 경제학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곳이며, 따라서 이 기하학에 기반해 경영자들은 자신들의 실질적인 통치성을 구성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재무관리는 경영학의 헌법이자 자본주의의 숨겨진 반도체 칩이다. 마케팅이나 인사관리나 생산관리는 이 재무관리의 기하학적 구조를 완성하기 위해 배치된, 재무관리학의 신하들이다.

재무관리의 기하학적 구조와 엔진을 탈환하고 그것을 코뮨적으로 사용할 줄 모른다면(물론 그것은 사용과 함께 버려져야 할 것이지만), 코뮨적 목표를 단 하나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단언하건대, 이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은 ‘경제학’이 아니다. 경제학은 아주 우아하게 폼을 잡고 왕좌에 앉아 있는 듯 보이지만, 그는 정작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자다.

마치 법적 구조를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균열을 내지 않으면 소수자의 권리와 미래를 구성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무리 법률적으로 균열을 냈다 하더라도, 현대 통치성 아래의 사람들은 여전히 재무적 구조 안에 생계를 묶인 채 살아가며, 그 어떤 돌파도 이뤄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의 철학에는 변호사가 아니라, 회계사가 필요하다. 개인과 기업의 재무구조에서 균열을 찾아내고, 그 균열을 심화시키고 흔드는 회계사적 철학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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