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가 기존의 스콜라 철학을 거부하고 스스로 세계를 해석하는 저자가 되고자 했던 것처럼, 우리 시대의 인문학자들도 단순한 주석가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라는 미완성된 텍스트를 새롭게 써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의 많은 학자들은 여전히 기존의 이론과 개념을 반복적으로 해설하는 데 머물러 있으며, 이는 마치 데카르트 이전의 철학자들이 신학적 권위 속에서 진리를 찾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만약 학자들이 주체적인 사유를 통해 새로운 사상의 지평을 열지 못한다면, 이는 곧 우리의 학문이 여전히 근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임을 의미하고, 근대적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자기 자신 안에 주석가(kommentator)가 아니라 저자(autor)가 있음을 발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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