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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는 계(戒), 정(定), 혜(慧)라는 세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왜 ‘계’가 맨 처음에 나와 있을까? 『상응부』에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이 유익한 법들의 처음인가? 아주 청정한 계다.”

악을 짓지 않아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매에 들고 마음챙김 수행을 하기 위해 가장 좋은 조건은, 과거의 후회로 끌려다니는 일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사실 ‘계’는 우리가 흔히 아는 사회적 도덕 규범을 지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계의 핵심 목표는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극단을 피하는 데 있다. 쾌락에 탐닉하면 신체적·정신적으로 피로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당연한 조건이다. 쾌락은 적절해야 하지만, 그 ‘적절함’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기준에만 의존할수록 잘못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계율을 통해 그것을 훈련하게 하는 것이다. 이 계율이 지켜지지 않으면, 이후의 수행에서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계’는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후회할 만한 행위들을 최소화함으로써 마음속에 청정한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이자, 궁극적으로 생리적 시도이다. 즉, 그것이 바로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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