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밍거스, 『Epitaph』(1989), “Epitaph”
내 글이 사후에는 어떻게 읽힐까. 내 아들이, 혹시 출판되지 않은 채 내 컴퓨터에 남겨진 글들을 읽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될까. 아니, 나는 그때 어떻게 하고 있을까. 언젠가 메모앱에 써 놓고 떠난 문장 뭉치들 사이로 나는 유령처럼 서성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문장 뭉치들과 함께 내 아이에게 들어갈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이버 공간 어딘가에서 문장들끼리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도. 벽지의 얼룩처럼 남아 유령이 된 메모들, 글들. 유령이란 다른 게 아닐지도 모른다.
밍거스는 만년에 불교에 심취했다.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는 화장되어 인도의 갠지스강에 뿌려졌다. 생전에 두 시간짜리로 작곡된 “Epitaph”는 사후에 군터 슐러(Gunther Schuller)에 의해 실제로 연주되었다. ‘Epitaph’는 ‘비문(碑文)’, 즉 무덤에 새기는 글을 뜻한다. 밍거스는 이 작품을 자신의 예술적 생애 전체를 요약하며, 말 그대로 ‘음악적 묘비명’으로 구상했던 것일까. 밍거스가, 소리와 함께,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 이 방에 와서 꿈처럼 서성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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