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은 구축이다
나는 오십이 넘었고, 이제 오십오 세를 향해 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주 떠오른다. 어머니의 가방을 몰래 열어 오락실에 갈 동전을 뒤지던 꼬마, 태권브이 장난감을 들고 아버지 손을 잡고 동네 목욕탕에 가던 꼬마.
그때 어머니 지갑에는 천 원짜리, 오백 원짜리 지폐 몇 장과 백 원짜리 동전 몇 개가 전부였다. 내가 몇 개 집어가면 금세 티가 날 정도로 단출한 지갑이었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그것을 나무라지 않으셨다. 아마 동전 서너 개, 많아야 오백 원짜리 한 장쯤은 그냥 써도 괜찮다고 여기셨던 것 같다. 다만 너무 자주 그러면, 눈빛으로 조용히 노려보며 “한 번 더 그러면 혼난다”는 정도의 경고를 하셨고, 그걸로 끝이었다. 아마 다섯 번이나 여섯 번쯤 그러고는 그만두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비난자에 가까운 가혹한 비판자였고, 어머니는 방관자에 가까운 따뜻한 관찰자였다. 아버지는 목욕탕에 가서도 냉탕에서 나에게 수영을 시켜보려고 했다. 일곱 살 꼬마에게 냉탕은 거의 대형 풀장이나 다름없었는데, 아버지는 그 탕 안에서 나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려는 듯, 욕탕이 터져라 외치며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였다.
언젠가 바다에 갔을 때는, 내 키를 훨씬 넘는 깊은 곳에 나를 던져놓고는, 그곳에서 해수욕을 하며 자신에게 오라고 외치셨다. 지금도 잠을 자다가 물에 허우적대는 꿈을 꾸며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바로 그 장면이다. 극우파의 닥달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나는 아버지의 그 닥달이 내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냥 내버려 두었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어머니야말로 나에게 진정한 풍요의 세계였던 것이다.
현대 철학자들은 철학사를 다룰 때, 각 철학자가 만들어낸 사유의 최선을 드러내되, 동시에 그 최선 속의 한계에 몰입하며 비판한다. 그리고 그 비판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철학의 지평을 구성하려는 목표를 내세운다. 물론 ‘비판’의 사명이란 한계를 드러내고, 그 한계에 균열을 내기 위한 것임을 안다면, 그것은 분명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철학의 전부이거나, 철학의 본질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해이자 왜곡일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비판에만 몰두하는 태도는 매우 제한적인 역할에 그칠 뿐 아니라, 때로는 지식을 억압의 형태로 굳혀버리는 퇴폐적 습관이 되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이 특정 텍스트 해석과 비판에 몰두하는 현상은 그러한 퇴폐적 습관의 증상이다. 사실, 그것은 자신의 철학적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일부는 마르크스 또한 그러했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엔 마르크스의 작업은 단순한 ‘비판’이라기보다 ‘재구축’, ‘재구성’이었다. 그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재구성의 방식으로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갔다. 타인을 무너뜨리는 것뿐 아니라 자신까지 파괴해버릴 수 있는 비판의 위험을 피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구성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철학사의 지하를 파내고, 화석처럼 굳어버린 긍정들을 다시 꺼내는 작업. 그것이 우리 독서의 주요 임무가 되어야 한다. 오히려 ‘비판’은 그런 긍정 위에 드물게 솟아나는 유희, 즉 드문드문 일어나는 찰나의 불꽃이어야 한다. 그럴 때 비판은 음식의 풍미를 살리는 소금처럼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이 주가 되어버리면, 과도한 소금처럼 철학이라는 음식을 망치게 될 것이다.
어머니의 지갑처럼 — 몰래 가져가 쓰게 하라.
타인의 자기 생각은, 자기 자신의 자기 생각으로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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