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지적 대상에 대해 개념화하고 이론을 구성할 때, 그 대상을 둘러싼 지식 체계를 깊이 연구한 뒤에야 비로소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이 그렇게까지 결정적인 조건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학술 연구를 하는 분들에게 조롱당할 이야기일 테니 쉽게 말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오히려 철학은 박식한 학술이나 언어 능력으로부터 단절될 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박식한 학술에 발목이 잡히면, 기껏해야 1미터짜리 철학밖에 되지 않는다.
철학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의미를 광적으로 확대시키는 방식의 연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근거를 확인시켜주는, 적당히 유능한 작업자일 뿐이다. 오히려 철학은 마네처럼, 담론적 의미나 광학 법칙을 무화시키려 애쓰는 비담론적 탐구로부터 나온다. 즉, 철학은 학술적 재현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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